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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모아

백종원 프로필 근황

by 류도령 2021.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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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프로필

출생
1966년 9월 4일 (54세)
충청남도 대전시
거주지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본관
수원 백 씨 수원파 32세
신체
키 175cm, 혈액형 A형
학력
서울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사회사업학 / 학사)
병역
roka logo 대한민국 육군 중위 만기 전역
가족관계 
조부 백창현(1917년생), 조모 김만금(1917년생)
부 백승탁(1935년생), 모 이경숙(1939년생),
큰누나 백종란(1963년생), 둘째 누나 백순영(1965년생), 남동생 백종진(1970년생)

배우자

소유진(2013년 결혼 ~ 현재)

자녀

아들 백용희(2014년 4월 9일생)

딸 백서현(2015년 9월 21일생)

딸 백세은(2018년 2월 8일생)

소속

더본코리아(대표이사)

학교법인 예덕학원(이사장)

경력
1994년 1월~ / 더본코리아 대표이사
2012년 5월~ / 학교법인 예덕학원 이사장[9]
2016년 2월 ~ / 예산군 홍보대사
2016년 2월 ~ / 위스타트(We Start) 홍보대사
2017년 3월 ~ / 한우 홍보대사
2017년 4월 ~ / 제16회 식품안전의 날 홍보대사
2020년 6월 ~ / 충남교육 홍보대사

2020년 9월 ~ / 한돈 홍보대사

종교
개신교(장로회)
채널
유튜브 백종원의 요리비책, 인스타그램 백종원의 요리비책
팬덤
팀원

 

대한민국의 요리연구가, 요식기업인, 학교법인인이자 유튜버, 예능인, 방송인.

 

 

백종원은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요리사보다는, 외식 사업가로서의 감각과 아이디어에 더 특화되어 있다. 무엇이 히트를 칠지, 어떻게 하면 사업이 더 확장될 수 있을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실행할 때의 요리의 맛이나, 분위기 등의 부가적 요소들을 파악하여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으로, 이러한 그의 사업가적 면모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현재 출연 중인 골목식당과 맛남의 광장이다. 이외에도 백종원의 푸드트럭, 고교급식왕 등의 프로그램도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고, 분기마다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라는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해 사장님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줬으며 현재는 진행을 안 하고 있다.

새마을식당, 한신포차, 홍콩반점 0410, 본가, 미정국수 0410, 역전 가락국수 0410을 비롯한 여러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가 운영하는 음식점의 종류는 고기류부터 중식, 한식, 분식 등은 물론 카페 '빽다방'까지 거의 모든 범위를 아우른다. 대표적으로 대패삼겹살과 우삼겹을 상표로 등록했고, 그 외에도 친숙한 음식들을 다루면서 실력과 상업성을 인정받았다. 이런 능력들을 바탕으로 2013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다.

경영하는 음식점들 대부분이 가성비 음식을 주로 다루는 체인점이라 이래저래 의문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2015년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방송에 진출, 그리고 Olive TV의 한식대첩 시즌2(2014), 한식대첩 시즌3(2015)의 심사위원으로 나와서 요리 및 식재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과시하면서 일명 '백'과 사전으로 이미지를 완전히 쇄신하여 뛰어난 능력을 입증해냈다. 또,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구수함과 친근함에 타고난 예능감까지 선보이며 대세 예능인으로까지 발돋움했다. <힐링캠프> 백종원&소유진 편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이후에 여러 차례 힐링캠프에 출연하게 되었다.

2016년 이후에는 관련 서적도 1위를 휩쓸었고, 2017년에는 집밥 백 선생으로 방송 MC 브랜드 평판 1위까지 올라갔으

며 그 해 SBS 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더 나아가 2018년에는 SBS 연예대상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성공했음에도 예비창업자들과 자영업자들이 귀담아들을 현실적인 노하우를 많이 설파한다. 방송으

로 이름을 타기 전인 2013년부터 요식업 자영업자를 꿈꾸는 사람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해 왔으며, 이는 더본코리

아 유튜브 채널의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에 업로드 되었으나, 백종원의 요리비책으로 채널로 리뉴얼되며 기존의 영상

은 삭제되고 편집본으로 순차적으로 업로드 중이다. 자영업을 염두하고 있다면 한 번쯤은 봐 둘 만한 좋은 이야기들이 많

다. 또한 식당을 위한 대용량 레시피집인 '백종원의 식당 조리비책'(2009)을 쓰기도 했는데 이런 대용량 요리책은 국내에

서는 매우 드물고 귀한 자료이다. 이 대용량 조리법은 백종원이 유튜브 컨텐츠로 활용하기도 했다.

 

2019년 3월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요리 만화를 내게 되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나온 내용으로 보인다.

맛남의 광장에서 과메기 밀키트 영업에 도전하는 백종원이다.

 

백종원의 성장기

 

1966년 충남 예산군에서 집안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 상경해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엔 잠시 서울특별시 장한평에 위치한 중고차 시장에서 자동차 중개업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KBS 방송 대화의 희열에서 어렸을 적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만석꾼이었던 증조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영향인지 장사꾼 기질이 어렸을 때부터 있다고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9살 때에는 산에 놀러 갔다가 본 버섯 농장에서 별다른 투자도 안 한 거 같은데 돈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꿈을 버섯 농사로 정한 적도 있었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캔이 아닌 병에 음료가 나올 시절에 음료수 병을 보고 저게 돈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 학교 리어카를 빌려 오락 시간과 보물찾기 같은 시간을 다 건너뛰고 공병을 리어카 6개 분량을 모아서 고물상에 갖다 팔아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리고 5학년 1학

기 까지 이렇게 돈을 벌었고 방위성금으로 다 냈다고 한다. 5학년 2학기부터는 공병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주변

에 나서 할 수가 없었다고.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 입시가 끝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친구의 형이 중고차 장사를 하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로 호객 행위를 시작하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이 호객 행위가 너무 단순했으며 막상 이렇게 손님을

불러와도 안에서 딜러들이 설명을 너무 못하고 어떤 차를 원하는지 바로 알아채지 못해서 본인이 직접 알려줘도 딴소리

를 하면서 손님을 놓치는 게 답답한 나머지 직접 딜러를 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딜러로 일하기 시작한 지 40분만에 차를 파는 데 성공하고 며칠 만에 차를 6대나 팔았다고 한다. 그런데 두 번째로 차를 사간 손님이 미터기 조작과 사고 경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모르고 팔았던 백종원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다고 한다. 거기에 충격을 받아서 자동차를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거기까지는 의욕이 없어서 더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사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빨리 그만둔 이유는 다른 구매자들도 따지러 올까 봐 그랬다고 한다.

 

 

 

요식업의 시작

처음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요식업에 뛰어든 것은 대학생 때로, 연세대학교 1학년 때 아르바이트 삼아 일한 압구정동 호프집을 한 달만에 인수한다. 이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유는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어서. 이때 상권이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주변에 치킨 가게가 없으니 배달이나 포장 판매를 하는게 좋다고 생각해 주인 할머니에게 권유를 했지만 할머니는 썩 내키지 않는 반응을 보였고 이를 설득해서 본인이 하겠다고 나서서 마음대로 하라는 허락을 받은 끝에 핸드메이드 전단지를 만든다. 근데 전단지를 돌리고 싶었는데 당시 아파트의 경비가 삼엄해서 경비에게 치킨을 돌리면서 전단지를 돌릴 수 있게 허락을 받아 아파트에 전단지를 돌렸고 돌아오자마자 전화가 많이 와서 이 때 장사의 맛을 느꼈다고 한다. 정작 이 때는 이렇게 반응이 빠를 줄 몰라서 준비가 아직 안 된 상황이라 곧바로 배달을 시작하지는 못했다고. 그러다 얼마 안 가서 일이 너무 많아지니 치킨 튀기는 기계도 5대까지 늘렸지만 할머니가 병을 얻고 가게가 잘되니 힘들다는 이유로 가게를 내놓기로 결정했고 이걸 아쉽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가게를 직접 하지 않겠냐고 할머니가 먼저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근데 돈이 통장에 그렇게 많이 없어서 돈이 어딨어서 가게를 인수하냐니까 할머니가 지금 가진 것 만이라도 가져오면 내주겠다, 너는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며 가게를 백종원에게 넘긴다. 그렇게 잔금을 모두 갚으면서 가게를 완전히 인수하고 이후 3년간 가게 3개를 운영하며 15억 원대의 자산가가 되었으나, 백종원이 나이트클럽을 인수하려던 것을 알게 된 가족이 기겁을 하고 반대하는 바람에 대한민국 육군 학사장교로 지원하게 하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첫 면회 때 "그간 행적을 모두 알고 있으니 꼼짝 말고 군 복무나 열심히 하라"라고 하셨다고. 결국 나이트클럽은 인수하지 못했고, 입대 후 가지고 있던 호프집은 헐값에 처분했다고 한다.

 

군 시절

 

1989년, 가족에게 쫓기듯 육군 학사 14기로 들어가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하고 난 이후에 육군 제7포병여단에서 포병장교로 복무했지만 중간에 간부식당 관리 장교라는 전무후무한 직책을 만드는 업적을 달성했다. 리얼 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 사령부 편에서 요리대회 심사를 맡았을 때 밝힌 바에 따르면, 포병여단 본부대 부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부대 간부식당의 음식이 하도 입에 안 맞아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고 판단하고 그냥 간부식당 일을 했다고 한다. 장교가 자기 임무 팽개치고 취사반이나 기웃거린다고 참모 장교한테 불려 가서 조인트를 맞기도 했지만, 식당을 기습 시찰한 여단장님께서 밥맛을 보고는 백 중위의 보직을 정식으로 인정해버리면서 간부식당 관리 장교가 돼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참모 장교들의 대우가 180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전역 1년 전 간부식당의 운영을 맡아 된장찌개를 뚝배기에 담아주는 것부터 시작하여 나중에는 뷔페식으로 바꾸는 업적을 달성했다고 한다. 명색이 장교인 데다 음식 맛을 본 별들의 선택에 의해 조리사관이 된 만큼 사회로 치면 수석 요리사인 셰프 역할을 하면서 휘하 병력들에게 보조적인 지시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백종원은 장교 출신자 중에서는,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최초, 전무후무, 그리고 유일무이한 보직인 '급양 과장'으로 인정받아 보직했던 경력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초기에는 새로 온 장군의 입맛이 까다로웠고 자기가 먹기에도 너무 힘들어서 간부식당을 가지고 항상 논의를 하다가, 반 장난으로 자기가 직접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가 진짜로 성사되었다고 한다. 당시 취사병들이 사회에서 요리를 하다 온 사람들이고 군기는 군기대로 완전히 빠진 상태라 간부가 취사 일에 관여하려고 하면 개무시를 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래서 보름 동안 가만히 지켜보겠다고 선언한 다음에 보름 동안 항상 무, 칼, 도마를 간부식당으로 가지고 가 칼로 무 써는 연습을 매일 4~5시간씩 했다고 하며 보름이 지난 후에 무생채로 점심 메뉴를 바꾼 다음 채칼이 아닌 칼로 무를 썰라고 지시해 자기가 시범을 보이고는 말빨과 연기력으로 취사병을 휘어잡고 간부식당을 접수한다. 그리고 메뉴가 정해지면 그 메뉴에 대해서 전날에 미리 엄청나게 공부하고 당일날 병사에게 레시피를 읊어보라고 한 뒤 거기에 참견하는 식으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방법을 써서 취사병들을 휘어잡았고 이 과정에서 요리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으며 식당을 운영하는 방식과 요령을 깨우쳤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배추를 살 때는 배추가 비를 맞으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이용해서, 비 예보가 있는 날 트럭을 몰고 나가 비 맞은 배추를 트럭 째로 싸게 산 다음 이걸 병사 목욕탕에 넣어놓고 절이는 식으로 부식비를 절감시키면서 운영했고, 그 미식가 장군이 음식 맛이 좋아진 것을 칭찬하면서 필요한 건 없냐고 물어봤을 때 식당에서 뚝배기를 끓일 때 쓰는 업소용 레인지 2대를 사서 찌개를 뚝배기에 넣어 배식하는 방식으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로 등극시켰다고 한다. 전역이 약 1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시작한 일인데도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임한 듯하며 오히려 이 일이 재밌어서 외박도 안 나갔고 그 장군에게 1년만 더 하지 않겠냐고 제안도 받았다고 한다.

사업 시작

 

전역 후 1993년에 원조 쌈밥집을 인수하며 요식업에 뛰어들었고 1994년에 더본코리아를 설립하기도 했지만 요식업(지금의 원조 쌈밥집)은 요리 좋아하는 취미로 돈 좀 버는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가볍게 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원래 꿈은 세계를 누비는 무역업자로 목조 주택 사업이 실제로 신경 썼던 분야였다고.

그러나 여기에서 백종원 인생 최대의 굴곡이 시작되었는데 IMF로 주택 사업이 망하고 자신의 수중에는 17억 원의 빚과 원조 쌈밥집 가게가 전부였었다고 한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자 결국 인생을 마무리하기로 결심했는데 그 장소로 홍콩을 선택했다. 막상 출국해서는 일단 좀 먹고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눈에 들어오는 식당들에 가서 식사를 했는데 이때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들이 떠오르면서 결국 마음을 고쳐먹고 귀국하게 된다. 귀국 이후 17억 원의 채권자들을 모두 모은 뒤 그 앞에서 '기회를 주신다면 식당을 해서 모두 갚겠다'라고 말했고 채권자들은 그의 마음이 통했는지 전원 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백종원은 사업에 전력으로 덤벼들어, 망해가고 있던 원조 쌈밥집 가게부터 시작해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1998년 한신포차를 시작으로 2002년 본가, 2004년 해물떡찜 0410, 2005년 새마을식당[35], 2006년 빽다방, 홍콩반점 0410 등 내놓는 아이템마다 대박을 치며 17억이나 하던 빚을 모조리 청산했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가족관계

 

그의 할아버지는 예산경찰서장을 역임하였고 예덕학원재단을 만든 백창현이며 그의 아버지는 전 충남교육감이었던 백승 탁이다. 그래서 고향인 예산군에 있는 예산고등학교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한밤의 TV연예'의 코너에서 백종원의 인기 요인을 분석하다가 취재진이 예산고를 찾아갔는데, 교감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사장이 사립학교 급식에 관여할 수 없다"고 한다. 대신 개인 기부의 형식으로 1달에 2번씩(원래는 1번이었으나 최근 더 늘어남.) '더본 데이' 행사를 시행, 더본코리아 주방장들이 학교로 와서 직접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예산고등학교 급식 게시판을 보면 된다.

 

결혼 계기와 기부활동

 

배우자 소유진과 나이 차이가 15살 나는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두 사람을 소개한 사람은 백종원과 동갑내기인 배우 심혜진. 심혜진은 왠지 둘이 닮은 면이 있어서 어울리겠다 싶어서 중매를 해줬다. 부부는 기부 활동에 열심인데 소유진은 ‘한사랑 장애영아원’을 방문해 광고 모델료를 기부하며 아이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매트리스를 전달했고, 백종원은 한식대첩 2 출연료 전액을 부산관광고등학교 한식조리학과 학생 18명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최근 생활용품 CF 출연을 통해 받은 출연료를 저소득층 환아를 위해 서울성모병원에 기부했는데, 해당 병원은 첫째의 출산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한식대첩 3의 출연료 또한 전액을 위의 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는데 이를 보도한 기사의 베댓이 실로 압권. 나 착하쥬? 기부를 싸악, 기부 안 해봤쥬(새침) 백종원은 성격상 이벤트 같은 걸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 가끔 하는 이벤트가 방송에 나오는 요리 만들어주기라고 한다. 소유진이 방송을 보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발견하고 먹고 싶다고 하면 유심히 지켜보다가 똑같이 만들어준다는 듯.

여담

 

50종류의 프랜차이즈를 세우고 점포를 50개씩 내는 사업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식재료를 직접 생산하는 농민이 도매업자와 밭째로 직거래 계약을 하더라도 재료값이 폭락할 경우 도매업자가 가져가지 않고, 값이 폭등하면 농민이 위약금을 지불하고 다른 업자와 계약을 해버린다. 자신이 본사를 키우고 시스템을 만들어 생산자와 장기계약을 해서 재료값이 움직여도 농민이 계약을 파기하지 않고 자기 몫을 가져가게 해드리고 싶다. 그렇게 하여 더본코리아 측에서는 식재료를 한꺼번에 가공해 일정한 질의 식재료를 가맹점에 납품할 수 있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게 하겠는 것이 목표다".

 

상호명 뒤에 숫자 0410을 붙이는 브랜드가 제법 있는데 이유는 그냥 습관적으로 붙이는 것 별 의미 없어.

당시의 자기 휴대폰 번호 뒷자리가 0410이었다고. 상호명만 넣자니 뭔가 허전해서 자기 휴대폰 번호를 쓴 거지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상호명이 중복될 때 후회하는 방책으로 쓴 게 아닌가 추측

 

 

 

무엇보다도 예상 못했던 여담은 바로 게임폐인? 이었었다는 거

블리자드사에서 서비스 중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와우)를 즐겼던 경력이 있다.

법장사라는 이름의 인간 사냥꾼을 플레이했고 데리고 다니던 야수의 이름은 세면발이 ㅋ

게임을 무척 좋아했으며 방송 중에도 종종 게임이 거론되기도 했다.

 

 

 

 

 

 

소유진 프로필 근황

소유진 프로필 출생 1981년 8월 11일 (39세) 서울특별시 송파구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본관 진주 소씨 신체 키 170cm, 몸무게 47kg, 혈액형 A형 학력 가원초등학교 (졸업) 가원중학교 

ryudoryu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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